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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홍준표 의원] 깨끗한 경선 결과 승복, '관심끌기' 역할 만족?

by 지방적 자아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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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방적 자아입니다.

 

국민의힘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본선 후보가 확정된 가운데 경선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의 이후 행보에 많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의 정치역정을 알아보고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출처-SBS뉴스 기사]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홍준표 의원은 오늘(5일)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홍 의원은 오늘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2차 전당대회에서 41.50%를 득표해 전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47.85%)과는 6.35% P 차이였습니다.

 

포옹하는 홍준표 의원 - 윤석열 후보 [출처-한국일보 기사]

홍 의원은 경선 결과 발표 직후 연단에서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드린다"면서 "이번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줬다는 역할이 제 역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이 모두 합심해서 정권교체에 꼭 나서 주도록 당부드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무야홍' 홍준표 의원[출처-서울신문 기사]

2040세대가 압도적인 지지를 한 ‘무야홍’ 바람에도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0대 대통령 선거 최종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습니다.

 

2017년 대통령선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출처-파이낸셜뉴스 기사]

 2017년 탄핵 대선에 나간 홍 후보는 청년들에게 막말 정치인·꼰대’로 불리며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4년 6개월 만에 청년세대의 마음은 돌아서 그를 지지했습니다.

결과는 홍 의원이 당원의 지지를 얻은 윤석열 후보에게 패했으며 여론조사에서 48.2%의 지지를 받았지만 당원(57.77%)의 지지가 공고한 윤 후보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국민의힘 경선 세대별 여론조사 결과[출처-굿모닝충청 기사]

홍준표 의원의 정치 여정이 아직 끝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래세대인 청년층이 그에게 높은 지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올해 “정치의 마지막 여정”이라며 다시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과는 다릅니다.

 

[출처-YTN뉴스 캡처]

 

지난 7월까지 그의 지지율이 3%대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이 40%를 넘은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선 본경선 여론조사에서 20대는 그에게 72.3%, 30대는 55.7%, 40대는 46.3%의 지지를 보냈습니다. 2040세대의 바람이 다시 불면 그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출처-내외일보 기사]

 

특히 어린 시절부터 수 없는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를 볼 때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입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홍 의원의 가족은 그가 7살이 되던 해에 살기 위한 일거리를 찾아 리어카에 짐을 싣고 대구로 떠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다시 합천을 거쳐 울산 복산동 판자촌에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

 

출처-티스토리 홍준표 공식홈페이지 '홍준표스토리' 

홍 의원의 아버지는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시급 800원을 받던 노동자였습니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어머니는 시장을 전전했고. 고시 공부를 할 때도 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았어도 세상을 증오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도 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고 더 큰 일을 해야겠다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검사시절'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출처-서울경제 기사]

사법고시를 합격한 홍 의원은 강골 검사로 성장했습니다.

1988년 서울 남부지청 특수부 시절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 사건을 수사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 전기환 씨를 구속했습니다.

 

전두환 氏의 형  故 전기환 氏

1992년 김영삼 정부 때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며 5공 실세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하며 이른바 ‘모래시계’ 검사라는 호칭이 붙었습니다. 검찰 수뇌부와 수많은 정치적 압력에 맞서며 스스로 비주류가 되었고 그러면서 그는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의원 - 박철언 전 의원[출처-조선일보 기사]

홍준표 의원은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서는 ‘DJ(김대중 전 대통령)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칼날은 매서웠다. 그는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때도 그는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2001년 동대문을 보궐선거에서 다시 당선돼 그는 보란 듯이 여의도로 복귀했습니다.

 

[출처-국민일보 기사]

그가 보수정당의 중량급 정치인으로 올라선 시점은 이명박 정부 때다. 2007년 대선에서 MB의 ‘BBK 의혹’을 최전선에서 방어한 그는 2008년 5월 당의 추대를 통해 원내대표에 올랐습니다. 기세가 오른 그는 2010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도전해 2위를 기록합니다. 홍 의원은 당 대표에 오른다. 하지만 이른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내세워 사퇴한 뒤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패배하면서 대표직은 짧은 임기로 끝난다. 2012년 총선에서마저 낙선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내리막을 향하게 됩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출처-오마이뉴스 기사]

 

이때도 어김없이 그는 살아났다. 2012년 김두관 경남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 출마로 생긴 보궐선거에 나서 당선된것입니다. 경남도지사 홍준표는 더 떠들썩했습니다. ‘강성노조’의 횡포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재정을 강제 다이어트하는 대신 복지를 늘리게 됩니다. 또한 경남지사 와중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그는 다시 2심에서 무죄를 받고 또 회생합니다.

 

검찰 소환에 응하는 홍준표 전 경상남도 도지사 [출처-쿠키뉴스 기사]

 

홍 의원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를 자처하며 대권 반열에 오른다. 대선 후보로 나선 그는 24%를 득표해 낙선했지만 탄핵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한 점에서 그는 “당을 궤멸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7 제19대대통령선거 득표율 [출처-중앙일보 기사]

홍 의원은 이후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 대표에 올라 보수정당 재건에 나서지만 앞길은 진흙탕이었습니다. 2018년 당내 친박계 의원들과의 내전, 지방선거 과정에서 ‘막말 정치인’으로 홍역을 겪으며 선거에서 패배한 뒤 당권을 내려놓습니다. 이때 정치권에선 그의 정치생명이 다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럼에도 홍 의원은 2020년 대구에서 무소속 출마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당선됩니다.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홍준표 의원 [출처-경향신문 기사]

 

8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한 그는 3%의 지지율을 안고 “정치 여정의 마지막 도전”이라며 대권 도전에 나섭니다.

그는 여론조사 지지율 40%, 민간 경제 활성화·수능 100% 정시 시행·사법고시 부활·강성노조 타파 등 선명한 정책을 주장하며 단 네 달 만에 지지율을 10배로 끌어올립니다.

 

리얼미터 조사 대선주자 선호도 추이[출처-뉴시스 기사]

 

이번에는 당심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탄핵 대선을 거치며 당 주요 인사들과 깊어진 상흔이 치유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결국 당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윤 후보에게 대선 후보의 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홍 후보는 대선 경선에서 그의 말대로 ‘스트롱 맨(강한 남자)'의 점을 정치권과 유권자들에게 다시 각인시키는 기회를 갖습니다.

 

인사말하는 홍준표 후보[출처-서울경제 기사]

 

홍준표 후보는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평당원으로서 백의종군을 약속했습니다.

백의종군[白衣從軍]
벼슬이나 직위가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나감

또 그는 자신의 전폭적으로 지지한 청년층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습니다.

홍 후보는 경선 이후 글을 올려 청년층을 향해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서 보내주신 성원을 잊지 않겠다”며 “앞으로도 남은 정치 인생을 여러분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출처-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캡처]

 

오늘은 비록 '무야홍'에는 실패했지만, '뒷심'으로 올라왔던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홍준표 의원의 선택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보수 야권의 유례없는 20-30-40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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