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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저. 김라함 역. 실천문학사. 2000.

by 지방적 자아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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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표지출처-알라딘]

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83년 생을 마감했다. 1백 세가 되던 1983년, 그는 지상에서 더 이상의 할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C%BD%A7_%EB%8B%88%EC%96%B4%EB%A7%81

 

스콧 니어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스콧 니어링(1883년 8월 6일 ~ 1983년 8월 24일)은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은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2][3]

ko.wikipedia.org

 그러나 현대 사회의 격변기와 맞물려 있는 1백 년의 짧지 않은 생애 동안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그의 삶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였고, 자유주의자이자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산주의자였다. 혁명과 전쟁의 시대였던 그 시기는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던 그를 전쟁의 광기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이끌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재판정에 서야 했지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33대 미 합중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 [출처-한경 생활문화]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그는 강경한 어투로 대통령 트루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개인적 자유의 수호자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한 사회철학자이자 자연주의자, 실천적인 생태론자로 손꼽힌다. 이러한 선구자적 생각과 단호한 태도 때문에 그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학강단에서 쫓겨나고 차츰 강연 요청도 끊겼으며 신문에 기고하는 글조차 거절당했다.

http://silcheon.com/

 

역사를 함께해온 출판사

역사를 함께해온 출판사

silcheon.com

 

헬렌 노드(헬렌 니어링)   [출처-위키백과]

그러던 중 니어링은 스무 살 연하인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지금은 헬렌 니어링으로 더 잘 알려진)를 만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

 

헬렌은 스콧에게 최고의 반려자이자 동지였다. 그들은 함께, 처음에는 버몬트에서 그리고 후에는 메인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는 여행을 떠나고 강의를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다.

 

1970, 80년대가 되자 그의 이름은 차차 사람들 속에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 니어링 부부가 손수 지은 돌집과 그들의 삶을 보러 찾아오곤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스콧 니어링은 가난하지만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명석한 몽상가로, 개인적 희생을 개의치 않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를 향한 존경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콧과 그의 아내 헬렌의 자연주의적인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이들의 삶에 감명을 받은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갔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출처-여성동아 기사]

 함께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유기농장에서 감자밭을 가꾸는 이 주름지고 구부정한, 팔꿈치를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괴팍한 노인이 금세기 초 뛰어난 연설과 강연으로 수천 명을 흥분시켰던 명연설가이자 1917년 반전논문 발표로 스파이 법에 기소되어 연방법정에 섰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조그맣고 깐깐한 노인일 뿐이었다.

 

 

 

 

 

 

 

 

 

1983년 8월 24일, 스콧 니어링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력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https://youtu.be/EzlLljNbGbw

저자는 권력층에 속하는 집안에서도 기득권이 아닌 다수의 행복과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를 이야기 함은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미국의 군사주의에 이성의 목소리를 냈다. 노동자와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 결과 스파이 혐의를 받고, 위험분자로 분류되어 공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가는 고통을 당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강의는 물론 책의 출판도 어렵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시켰다. 그리하여 반도덕적이고 추악한 권력의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갔다. 자의든 타의든 후의 그의 삶은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 원칙에 충실한 삶이 되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142140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조화로운 삶>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충만한 삶에 대한 영감을 준 헬렌과 스콧 니어링.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의 인생과 기록을 담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고침판이 25년 만에

www.aladin.co.kr

그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열한 가지의 원칙과 풍요로운 삶에 대한 네 가지의 조건을 들었다.

 

 최선을 다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번잡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간소한 의식주를 하여야 한다.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노동을 하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돕고,
모든 피조물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건강한 신체의 생존력과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지혜,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
자연을 받아들이는 감응력.

 

이 원칙과 조건을 지켜 나가는 하루하루가 그의 인생이 되었다. 남들에 의해 정해진 맥락이 아닌 나만의 맥락을 갖는 의미에서 그의 삶은 주체적으로 느껴진다. 주체적인 삶을 살길 바라는 현대인(나를 포함)에게 의미 있는 삶은 나에 의해 만들어진 원칙들을 지켜나가고 그 원칙의 행동으로 인해 나와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삶의 기준이 되는 원칙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1983년에 그는 100세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떴다.

스콧 니어링 [출처-월간 중앙]

죽음 앞에서 스스로라는 단어가 이렇게 거부감 없이 존엄할 수 있을까? 생에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확고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존경스러우면서 한편으로 인간으로서 죽음까지 스스로 결정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미국 화가 로버트 쉬트리&nbsp; <스코트 니어링의 초상> [출처-월간 중앙기사]

 나라면 아무리 의인, 자연친화적인 삶, 생태주의자라 하여도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 마취제도 사용하지 않고 식음조차 끊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자서전을 읽는 내내 평안했다.

잘 사는 삶, 그의 삶 자체가 주는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박하고 조화로우면서도 계획을 갖고 움직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참 배울 게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 일이면 절대 하지 않았고, 눈앞의 재물이나 이익을 좇지도 않았다.

https://youtu.be/cyi0KZ5vHLs

http://www.yes24.com/Product/Goods/125565

 

스콧 니어링 자서전 - YES24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는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그는 위험분자, 과격분자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철저한 소외를 당해야만 했던 인물이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www.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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